I 설레는 드로잉 뒤에 숨은 은퇴자들의 소소한 고민과 현실적 과제




요즘 지역 복지관이나 미술관의 풍경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기초 회화 강좌는 문을 열기가 무섭게 마감되곤 하는데, 이 활기찬 ‘수강 대란’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6070 실버 세대입니다. 평생 가족과 일터를 위해 달려온 이들이 이제는 수동적인 관람객에서 벗어나 직접 붓을 든 ‘창작자’로 변신하고 있는 것이죠. 한국 미술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실버 르네상스’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입니다. 그림을 그리며 마음의 평온을 찾고 건강까지 챙기는 모습은 우리 사회 전반에 참 기분 좋은 변화임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런 설레는 도전 뒤에는 은퇴 후 소득이 줄어들면서 취미 생활에 들어가는 비용을 한 번쯤 고민하게 되는 현실적인 아쉬움도 살짝 묻어 있습니다.

사실 미술은 처음 시작할 때 챙겨야 할 도구가 꽤 많은 취미 중 하나입니다. 수채화나 유화 세트, 캔버스 등을 하나둘 장만하다 보면 생각보다 비용이 쏠쏠치 않게 들어갑니다. 매달 들어가는 재료비와 수강료 역시 고정 수입이 없는 은퇴자들에게는 가끔 “이게 맞나?” 싶은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하죠. 취재 중에 만난 한 어르신은 “그림 그리는 시간이 정말 행복하지만, 물감 하나 살 때도 손주 간식비가 먼저 떠올라 망설여질 때가 있다”며 멋쩍게 웃으셨습니다. 이런 소소한 경제적 고민이 쌓이다 보면, 모처럼 찾은 즐거운 취미가 지속되지 못하고 중도에 멈추게 되는 안타까운 상황이 생기곤 합니다.

더불어 ‘초보’ 단계를 지나 좀 더 깊이 있게 배우고 싶은 이들에게는 또 다른 고민이 생깁니다. 대부분의 공공 강좌가 기초 단계에 머물러 있다 보니, 실력을 한 단계 높이려면 비싼 사설 아카데미를 찾아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주거 환경상 집에서 마음껏 캔버스를 펼쳐놓고 작업하기 어렵다는 점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여기에 정성껏 그린 작품을 이웃들과 나누고 전문가의 따뜻한 조언을 들을 수 있는 작은 전시 기회마저 부족하다 보니, 꾸준히 창작 활동을 이어가려던 의지가 금세 사그라들기도 합니다.

결국 실버 세대의 취미미술이 반짝 열풍에 그치지 않으려면, 이들의 열정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우리 사회의 작은 배려들이 필요해 보입니다. 예술이 소수만 누리는 특별한 행운이 아니라, 누구나 은퇴 후에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일상의 선물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거창한 정책이 아니더라도, 함께 모여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동네 아틀리에가 늘어나거나 재료비에 대한 작은 지원들이 더해진다면 어떨까요? 어르신들의 손에 들린 붓이 멈추지 않고 인생의 두 번째 도화지를 멋지게 채워나갈 수 있도록, 이제는 우리가 그 든든한 응원군이 되어줄 때입니다.


장민수 미술산책 기자 drawingwal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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